지성과 혐오에 대해
- 김규항의 베른하르트 <소멸> 추천사
엉뚱하게 들리겠지만, 지성이란 실은 혐오를 기반으로 한다. 왜냐하면 지성이란 지적인 것들의 축적도 지적 행동의 조합도 아닌 '세계에 반응하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 그래서 지성을 가진 사람은 언제나, 심지어 혁명에 투신하는 순간에도, 혐오를 품고 있게 마련이다.
이상주의자는 그 이상 때문에 단순해지는 속성이 있다. 그 단순함은 다시 이상주의를 단순하게 만들고 혁명을 단순하게 만든다. 그럴 때 필요한 게 인간과 세계에 대한 혐오다. 혐오를 모른다면 혐오를 넘어설 수 없으며 진정한 건강성과 아름다움을 구할 수 없다.
"이렇게 가망 없는 인간들을 상대로 대체 내가 뭘 하겠다는 거지?" 이렇게 중얼거릴 줄 모르는 이상주의자는 위험하거나, 적어도 경박하다.